마잉주 전 대만 총통이 2015년 싱가포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악수했을 때의 모습. 연합뉴스
마잉주 전 대만 총통이 ‘국부천대’ 이후 74년 만에 전·현직 총통을 통틀어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차이잉원 현 총통도 오는 29일 중미 국가들을 방문하는 중에 미국에 들를 예정이어서 내년 1월 대만 총통 선거를 둘러싼 미-중의 대리전이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마 전 총통은 27일 중국으로 출발하기에 앞서 “이번 교류를 통해 양안 간 긴장과 대립을 해소하고, 독자적인 노력으로 양안 대화 재개를 돕고 싶다”고 밝혔다고 대만 <연합보>가 전했다. 마 전 총통은 마잉주재단 산하 다주(大九)학당 학생과 지지자 30여명 함께 다음달 7일까지 12일간 중국에 머문다.
마 전 총통은 첫 일정으로 상하이에 도착해 고속열차를 타고 국민당 정부 수도가 있던 난징으로 가 ‘국부’인 쑨원의 무덤인 ‘중산릉’을 참배한다. 이어 다음달 1일엔 마 전 총통 조상의 묘가 있는 후난성 샹탄현을 찾는다. 그는 홍콩에서 태어나 대만에서 자랐으나 부모는 샹탄현 출신이다. 이밖에 중일전쟁 때 국민당 정부가 수도를 옮겼던 충칭 등을 들를 예정이다. 하지만 현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 베이징엔 가지 않는다. 샤오쉬천 마잉주재단 집행장은 “베이징 관계자들을 만날 계획도 없고 만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 전 총통은 이번 방중의 목적이 조상에 대한 제사와 민간 교류라고 강조하지만, 1949년 대륙에서 물러난 대만의 전직 총통이 사상 처음으로 대륙을 방문하는 것이어서 적잖은 국제적 파장을 부르고 있다. 마 전 총통은 대륙과 경제 협력과 교류를 중시하는 국민당 출신으로, 재임 시절인 2015년 1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첫 양안 정상회담에 나서기도 했다. 대만 언론들은 마 전 총통이 개인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하지만, 중국 정부가 국가 원수급 의전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지난 25일 자이현 군부대를 방문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AFP 연합뉴스
마 전 총통의 중국 방문 이틀 뒤인 29일엔 차이 총통이 대만과 외교 관계가 있는 중미의 과테말라·벨리즈를 방문한다. 차이 총통은 갈 때는 미국 동부의 주요 도시 뉴욕, 올 때는 서부의 로스앤젤레스를 경유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 내 권력 서열 3위인 케빈 매카시 미국 하원의장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
2016년 1월 집권한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2019년 한때 20%대까지 떨어졌지만, 중국의 강경한 홍콩·대만·신장 정책에 대한 대만 내 반발 여론이 높아지며 2020년 1월 총통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독립을 지향하는 차이 총통은 집권 기간 내내 미국과 안보 협력을 강화했고, 양안 관계는 줄곧 악화돼왔다. 특히 지난해 8월 초 낸시 펠로시 당시 미국 하원의장이 전격 대만을 방문하자, 중국은 대만섬 전체를 포위하는 살벌한 군사훈련을 진행했다. 그에 따라 미-중 관계 역시 크게 악화됐다. 중국은 독립을 지향하는 민진당보다 대륙과 대만이 나뉠 수 없다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공유하는 국민당이 정권을 잡는 쪽을 선호한다.
총통 선거에 나설 양당의 후보는 가시화되고 있다. 민진당에선 라이칭더 부총통이 후보로 사실상 확정됐고, 국민당에선 지난 23일 당내 분란이 예상되는 경선 대신 특별위원회를 통해 후보를 뽑기로 원칙을 정했다. 후보군으로 꼽히는 이들은 주리룬 당 주석, 허우유이 신베이 시장, 장제스 초대 총통의 증손자인 장완안 타이베이 시장, 궈타이밍 폭스콘 창업자 등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차이 총통보다 대륙에 더 강경한 자세를 보이는 라이 부총통이 1위를 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