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의 한 3층짜리 빌라 2층에서 불이 나 나이지리아 국적 어린이 4명이 사망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불이 난 빌라 모습.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27일 새벽 3시30분쯤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의 한 다가구주택 1층에서 불이 나 나이지리아 국적의 어린 4남매가 숨졌다. 불은 40여분 만에 진화됐지만, 안방에서 잠을 자던 아이들은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변을 당했다. 숨진 4남매는 11살과 7살, 6살, 4살이었다. 불이 난 집에는 숨진 남매와 부모인 ㅍ(55)·ㅇ(41)씨 부부, 2살짜리 막내까지 일곱 식구가 함께 살았다. 불이 나자 부부는 막내와 함께 창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왔지만, 현관 쪽에서 난 불이 삽시간에 번지면서 안방의 아이들은 데리고 나오지 못했다. 숨진 4남매는 특별한 외상 없이 안방에 누워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경찰은 질식으로 인한 사망으로 추정하고 있다.
여운철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장은 이날 오전 소방당국과 현장 합동감식을 벌인 뒤 “불은 현관문과 가까운 거실 바닥에서 시작됐다”고 밝혔다. 내부 면적이 40㎡ 안팎인 이 주택은 부엌 겸 거실과 작은 방 2개로 이뤄진 구조로, 불이 시작된 지점 인근에는 냉장고와 텔레비전이 멀티탭에 연결돼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현장에서 인화성 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정밀분석 결과 등을 검토해 정확한 화재 원인을 규명할 예정이다.
ㅍ씨는 15년 전쯤 한국에 들어와 중고 물품과 고물을 수집해 나이지리아로 수출하는 일을 해왔으나, 코로나19 확산 뒤 수출길이 막히면서 생계에 어려움을 겪어왔다고 한다. 현장 지원을 나온 안산시 관계자는 “통상적인 외국인 가정에 지원하는 수준 외에 따로 생계와 관련해 보조를 받은 사례는 없다”고 했다. 이들 부부는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인 안산 원곡동의 반지하 주택에 살다가 2021년 1월 초 화재 피해를 겪고 지금의 선부동 다가구주택으로 옮겨왔는데, 이번에 숨진 7살(당시 4살) 아들이 당시 화재로 2도 화상을 입었던 사실도 확인됐다.
ㅍ씨 부부는 안산에 거주하는 나이지리아인 모임과도 별다른 교류가 없었다고 한다. 안산에서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을 해온 박천응 목사(전 안산이주민센터 대표)는 “피해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안산 나이지리아모임 대표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ㅍ씨 부부가 입원 중인 병원을 찾은 박 목사는 “ㅍ씨는 거실에서, ㅇ씨는 자녀들과 함께 안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불이 나서 출입문 쪽이 막혀 창문을 통해 탈출했다고 한다. 연기와 유독가스 때문에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ㅇ씨가 곁에 있던 막내는 창문을 통해 내보냈지만, 다른 아이들은 챙기지 못했다고 한다. ㅇ씨도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골절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 경찰과 소방당국의 합동감식을 지켜보던 한 주민은 “특별한 교류는 없었지만, 골목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이 참 착하고 인사성이 밝았다”고 전했다. 그는 “골목 양쪽에 주차된 차량을 이동시키느라 시간이 지체되면서 소방차 진입이 늦어진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